가을이 되니 다시 이 책이 떠올랐다.
몇 해 전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그때는 흥미롭게 읽고 덮었지만,
요즘처럼 여행이 간절해지는 계절엔 문장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온다.
책을 다시 펼치며 떠올린 건,
여행지의 풍경보다 떠나고 싶었던 마음의 이유였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왜 우리는 떠나려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철학적인 대답이 담긴 산문집이다.
상하이에서 추방된 순간, 여행이 시작되다
책의 첫 장면은 다소 낯설다.
작가는 중국 상하이 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고,
이유도 모른 채 비행기로 되돌아오는 **‘추방의 경험’**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었다.
그는 그 순간에 여행의 본질을 깨닫는다.
“모든 여행은 어딘가 잘못될 가능성 위에 서 있다.”
계획이 틀어지고, 예상이 어긋나는 순간 —
그때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낯선 나를 발견한다.
낯섦 속에서 만나는 나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여행이 시작된다.”
김영하는 이렇게 말한다.
익숙한 공간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나 자신,
그 낯섦 속에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고.
그에게 여행은 도피가 아닌 회복의 과정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삶의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시간.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지도 위의 여행보다 마음속 여행을 먼저 하게 된다.
돌아옴이 완성하는 여행
떠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돌아오는 일이다.
작가는 말한다.
“떠남이 있어야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올 곳이 있기에 떠날 수 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여행의 목적은 어쩌면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돌아와 다시 살아갈 일상의 의미를 회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차 한 잔 마시며 읽는 책
『여행의 이유』는 한 번에 읽기보다
하루 한 챕터씩, 차 한 잔 옆에서 천천히 읽으면 좋은 책이다.
따뜻한 차의 김처럼 문장이 서서히 스며들고,
읽고 나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마음은 이미 어딘가로 향해 있다.
“여행은 끝나도, 그때의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가을밤, 차 한 잔과 함께 읽기 좋은 책. 조용히 펼치면, 잊고 있던 ‘떠남의 감정’이 다시 피어오른다.
작가 소개 — 김영하
소설가 김영하(金英夏)는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 등 현대인의 내면과 시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탁월한 언어 감각과 철학적인 시선으로소설뿐 아니라 산문에서도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는 “떠남과 귀환,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이라는 주제를 담아,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사유의 시간을 선사했다.
김영하는 시대와 인간을 통찰하는 작가로,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되, 그 안의 따뜻함과 유머를 잃지 않는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적인 목소리로 평가받는다.
대표 저서
구분 | 제목 | 발간 연도 |
비고 |
소설집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1996 | 데뷔작, 인간의 욕망과 정체성 탐구 |
장편 소설 |
검은 꽃 | 2003 | 멕시코로 이주한 조선인들의 생존기 |
장편 소설 |
퀴즈쇼 | 2007 | 자본주의 사회의 불안과 경쟁 풍자 |
장편 소설 |
살인자의 기억법 | 2013 |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의 시선으로 본 범죄 심리소설 |
산문집 | 여행의 이유 | 2019 | 여행과 존재, 삶의 의미를 성찰한 에세이집 |
에세이 | 말하다 | 2015 | 작가로서의 생각과 언어에 대한 철학 담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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